[스크랩] 기제축문(忌祭祝文)의 한글화 제안
제목 : 기제축문(忌祭祝文)의 한글화 제안
[취지 및 동기]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례(四禮) 혹은 관혼상제(冠婚喪祭)라 하여 관례(冠禮)·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에 관한 예법(禮法)을 중하게 여겨, 이를 실행하는 절차와 방법들이 소상히 전해져 오고 있다. 혹시 이를 실천함에 있어 정해진 절차에 어긋나게 하였을 경우에는 예의(禮儀)없고 무식(無識)한 자로 취급 되기도 하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그중 상례(喪禮)·제례(祭禮)의 올바른 실행이야말로 효(孝)를 실천하는 근본으로 여겨 오고 있으며, 생전에 못 다한 자식으로서의 부모에 대한 효도를 돌아가신 다음에라도 계속 하고저하는 자식의 의도가 숨겨져 있으며, 더욱 옛 어른들께서는 부모가 돌아가신 원인이 자식의 불효(不孝) 때문이라는 죄의식까지 마음속에 맺혀져 있어, 부모님 사후에 상례나 제례의식을 행함에 있어 이를 소홀이 하였을 경우에는 불효(不孝)를 범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상례(喪禮)의 경우에 장례를 모시는 당시에는 혹시 그 절차나 방법을 잘 모르더라도 집안 어른들이나 주위 지인들의 도움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이 모든 의식을 치룰 수가 있으나, 제례(祭禮)의 경우 절사(節祀)나 시제(時祭)와 같이 문중에서 공동으로 시행하는 경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고 보겠으나, 자기 집안에서 단독으로 행사를 하는 설이나 추석의 차례(茶禮)와 돌아가신날 지내는 기제사(忌祭祀)의 경우에는 집안에 제사를 관장하시는 어른들이 안 계실 때가 있으므로, 이런 경우에 제주가 제례에 관한 지식에 부족하다면 난감한 일이 생기게 된다. 알고도 형편이 되지 않아 못하는 것과 모르고 못하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일부 젊은 층에서 우리 어른들의 조상을 받드는 숭고한 정신과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고자 뜻을 두고 있는 이들이 있으나, 과거의 제례관습의 절차와 방법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 나머지 그냥 울물우물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가장 제례의 기본이 되는 기제사(忌祭祀) 축문도 작성하지 못하니 다른 절차를 제대로 지켜 제사를 지낼 수가 있겠는가? 이에 그 해결 방안의 하나로 [한글화된 축문]을 제안하게 되었다.
[기제축문 사용의 현실]
고인이 돌아가신날 지내는 기제사(忌祭祀)에 축문이 있어야 삼헌(三獻)의 예(禮)를 제대로 갖춘 제사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제사 음식만 융성하게 차려 놓고, 술만 많이 따라 올리고, 절만 많이 하면 제사 잘 모시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숭배의 참된 뜻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왕 조상들의 정신과 관습을 따를 의도가 있다면 대대로 내려오는 절차와 방법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기제축문(忌祭祝文)을 작성할 수 있는 경우는 첫째,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다른 집안 어른으로부터 축문 쓰는 요령을 배운 경우이거나 둘째, 축문 쓰는 방법을 스스로 익힌 경우이거나 셋째, 타인에게 축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셋째의 경우는 제주(祭主) 자신의 자존심(?)과 관계되는 일로 자기 집안 친척이나 흉허물이 없이 막역한 이웃이 아니라면 이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위의 셋째 방법마저 쓰지 못한다면, 축문없이 기제사를 모실 수 밖엔 없는 것으로, 이럴 경우에는 "무축단잔(無祝單盞)"이라하여 축문없이 한잔만 술을 올리는 것이 재래의 예법으로, 석잔의 술을 올리는 "삼헌(三獻)"의 절차와는 상당히 다른 제사 절차가 되는 것이다. 이런경우 실제로는 이와같은 제례의 기본 예법이 무시된 채, 제상에 준비된 제물을 올려 놓고, 잔을 올리고자 하는 자는 모두 술잔을 올리는 ...등 제주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제사방법이 생기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기제축문의 기본형식]
현재 아버지 기제사에 사용되고 있는 한문(漢文)으로 된 축문(祝文)의 예를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維 歲次 戊子 七月癸酉朔 十五日丁亥
孝子 吉童 敢昭告于
顯考學生府君 歲序遷易
諱日復臨 追遠感時 昊天罔極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鄕
위에 한문으로 된 축문의 형식을 구분하여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제사 지내는 날짜.
( 유 세차 □□ ○○월□□삭 ○○일□□ )
( 維 歲次 □□ ○○月□□朔 ○○日□□ )
[ 해가 바뀌어 □□년 음력 ○○월 ○○일 ]
2. 제사를 올리는 사람.
( 효자 ○○ 감소고우 )
( 孝子 ○○ 敢昭告于 )
[ 아들 ○○는 ______ 께 고하나이다 ]
3. 제사를 받으시는 분.
( 현고학생부군 )
( 顯考學生府君 )
[ 돌아가신 아버님 (께) ]
4. 제사 올리는 자의 심경.
( 세서천역 휘일부림 추원감시 호천망극 )
( 歲序遷易 諱日復臨 追遠感時 昊天罔極 )
[ 해가 바뀌어 돌아가신(제사)날을 맞이하여 먼 옛날을 생각하니
부모님의 은혜가 하늘처럼 높고 넓어 헤아릴 수 없사옵니다 ]
5. 제사 올리는 자의 바램.
( 근이 청작서수 공신전헌 상 향 )
(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鄕 )
[ 삼가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공손히 올리오니
흠향 하시옵소서 ]
모든 기제축문은 위와같은 기본형식을 기준으로 하고있으며, 제삿날짜에 맞추어 날짜와 필요한 간지(干支)를 고쳐 쓴 다음, 제사의 대상이 되는 분에 따라 일부분만을 변경해 주면 되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제사인지, 어머니의 제사인지, 부모 두분이 모두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어느 분의 제삿날인지를 알 수 있도록 일부분을 추가하거나 변경 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 현고휘일부림(顯考諱日復臨), 현비휘일부림(顯妣諱日復臨) ]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우에는 "호천망극(昊天罔極)"을 "불승영모(不勝永慕)"로 바꾸어 주는 것 외에는 부모님의 기제축문과 형식이 동일하다.)
위의 설명으로 알 수 있듯이 기제사의 축문이 한문(漢文)을 깊히 공부한 사람이라야 작성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익히면 누구나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도저히 축문을 작성할 수 없는 처지라면, "축문도 없이 제사를 모신다."는 한(恨)을 평생동안 가슴에 품고 제사를 모실 것이 아니라, 기본 한문(漢文) 축문의 내용을 반영하면서 오히려 제주나 가족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한글축문]을 써서 제사를 올린다하여 예법에 크게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한글축문의 내용 예시(例示)]
집안에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는 사당이 있는 경우에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조상님께 고(告)하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생전에도 윗 어른께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도 고하는 예의 바른 효(孝)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비록 일방적이기는 하지만, 축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돌아가신 조상(祖上)과 살아 있는 후손(後孫)간에 의사소통(意思疏通)의 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사당이 없는 집안이 대부분이므로, 기제사에서 축문을 통하여 이와같이 평소에 고하지 못한 집안의 내용을 제상 앞에서 조상님께 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축문속에 전 가족에게 알릴만한 중요한 사항이나 장차 계획등을 공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기존의 한문(漢文)축문을 한글로 풀어 쓴 예(例) **
해가 바뀌어 정해년 음력 칠월 열닷새
아들 길동은 돌아가신 아버님께 고하나이다
해가 바뀌어 돌아가신(제사)날을 맞이하여 먼 옛날을 생각하니
부모님의 은혜가 하늘처럼 높고 넓어 헤아릴 수 없사옵니다
삼가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공손히 올리오니
흠향 하시옵소서
** 순 한글축문 예 1 **
한해가 바뀌어 오늘이 정해년 음력 7월 열닷새 날이 되어
아들 "길동"이 돌아가신 아버님께 고하옵니다.
세월이 흘러 돌아가신 날을 맞아 먼 옛일을 생각하니
아버님의 하늘과 같이 높고 넓은 은혜 헤아릴 길이 없사옵니다.
동생 "길중"이 오는 팔월 초 닷새날 청풍김씨 가문의 아릿다운 규수를 아내로 맞이 합니다.
앞으로 "길중" 내외의 앞날에 행복한 보금자리와 현명한 손주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늘나라에서 지키고 보살펴 주시옵기 간절히 비옵니다.
아버님께서 평소 즐겨 잡수시던 설악산 깊은 계곡의 다래를 비롯하여
안동에서 새로 나온 "안동법주"와 여러 음식을 공손히 올려 드리오니
흠향하시기 바라옵니다.
** 순 한글축문 예 2 **
한해가 바뀌어 오늘이 정해년 음력 7월 열닷새 날이 되어
아들 "길동"이 돌아가신 아버님께 고하옵니다.
세월이 흘러 돌아가신 날을 맞아 먼 옛날을 돌이켜 생각하니
아버님의 하늘과 같이 높고 넓은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사옵니까
금년 봄에 손주 "한수"가 ○○대 입학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가문의 영광으로 온 집안과 이웃들이 모여 동네 잔치를 벌렸습니다.
앞으로 물리를 전공하여 훌륭한 과학자로 키울 생각입니다.
명년 3월에는 ○○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명년 제사는 풍광 좋은 새로운 집에서 더욱 풍성하게 올리겠사옵니다.
다시 뵈올때까지 하늘나라 좋은 세상에서 내내 평안하시기 바라오며
맑은 약주와 여러 음식을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였사오니
흠향하시옵기 바랍니다.
[결 론]
기제사의 축문은 한문(漢文)을 아는 사람이라야 쓸 수 있는 전문적인 형식이라고 볼 수 없으며, 순 한글로 축문을 작성한다고 하여도 기존에 작성했던 순 한문(漢文) 축문에 비하여 내용이 허술하다거나 예의에 크게 벗어 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지난날의 축문 형식에 억매이거나 한문(漢文)을 잘 알지 못한 제주(祭主)가 고(告)하고 싶은 자기의 의사를 다 표현하지 못하는 모순은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며, 더욱 생전에 한문(漢文)을 배우지 못하고 돌아가신 저 세상의 일부 조상님들을 위해서나, 한문(漢文)을 전혀 배우지 않거나 잘 모르고 제사에 참사하는 살아있는 이 세상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순 한글로 새롭게 시도되는 축문도 제사를 위하여 훌륭하게 소용될 수 있다고 보며, 또한 이 한글축문이 일반화 및 대중화되므로서 적어도 『축문 없이 지내는 기제사』는 이 땅위에 영구히 사라지는 날이 돌아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축문을 닦아 제사를 준비할 수도 있으며 이제 삼헌(三獻)의 정상적인 기본절차도 갖추어 제사를 올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는 상례(喪禮), 이장(移葬), 개장(改葬), 묘제(墓祭) 등 축문을 필요로하는 모든 의식(儀式)에 순 한글의 문장이 기(氣)를 펴는 날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이 제안(提案)을 한다.